top of page

Animals on Animals, 아트포럼뉴게이트, 서울

백연수 위의 동물

인간이 처음에는 네 다리로 겉는 동물 중에 가장 볼품없고 힘없는 종에 불과했지만, 직립보행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이 두 다리로 걷게 되면서 먼저 두손의 자유를 얻었고 그 두손을 놀리는 동안 뇌가 그만큼 발달했다는 것이다. 결국 다른 동물보다 월등하게 뇌가 발달한 인간은 다른 네 다리 동물들을 지배하는 위치에 이르고 말았다. 백연수 역시 두 손을 가지고 작업을 한다. 그리고 그가 만드는 것은 주로 짧고 두꺼운 다리를 바닥에 튼실하게 박고 서 있는 네 다리 동물들이다. 아트포럼 누 게이트에서 열린 백연수의 개인전에서는 작가의 넓고 두꺼운 통나무 조각에서 짧은 다리의 동물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비디오를 상영하고 있었다. 작가는 커다란 전기 체인톱을 움직이면서 동물의 다리 사이의 나무를 쳐내고 빈 공간을 만들어 낸다. 나무의 종류와 부분 부분의 나뭇결 그리고 지금 작업하고 있는 전체 형태들을 모두 종합해서 순간순간의 동물 형태를 자유롭게 조각한다. 작업의 속도가 결코 빠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머뭇거리거나 망설이는 낌새도 없다. 마치 네다리 동물들을 조각하는 작업의 매뉴얼이 작가의 내부에 이미 로딩되어있는 것 같다. 백연수의 동물은 그가 개인적으로 애정을 주는 대상을 넘어서서 작가의 모든 존재로 축구하고 있는 작업의 대상이다. 이미 작가의 내부에 깊숙이 새겨져 있고 경험되어서 동물이라는 존재를 가지고 세계를 의미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대상이다.

 

그런 맥락에서 (동물위의 동물)전에서 보여준 작업들은 꽤나 의미심장하다. 백연수의 동물들은 캔디칼라의 화려한 색을 입고 있는데, 이는 이미 인간의 손길없이는 살 수 없는 동물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위에는 작가가 부여한 일살의 이미지들이 턱하고 놓여져 있다. 네 다리로 굳건하게 서있는 동물들이 하나씩 그 위에 지고 있는 이미지들은 또 다른 동물의 부분이기도 하고, 달걀프라이나 고등어 같은 네다리 동물들과 전혀 동떨어져보이는 사물이기도 하다.마치 플래시가 터지듯이 순간적으로, 작가에게 스치는 일상의 은유가 동물 위에 중첩된 것이다. 이미 작가에게 깊이 체화되어 있는 동물의 형태들은 사회에 길들여진 것을 의미하는 인공적인 색을 입고 있고 그 위에 일상의 반짝입을 선물고 받는다. 그 반짝임이야말고 작가의 직관으로 동물에게 부여한 삶에 대한 은유이다. 백연수의 상상력은 정확히 일상의 단면을 경험하는데서 오는 정직한 직관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직관으로부터 오는 투명성이 일사의 진리를 사물 그 자체 안에서 경험하게 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글: 이수영 (미학)

36.jpg
38.jpg

© 2018 by  Yeonsu Baek

bottom of page